M&A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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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던진 숫자가 M&A 협상의 천장을 만든다

2026-04-22

M&A 협상에서 가장 많이 듣는 조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처음에 가격 제대로 잡아야 한다."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이를 무시했다가 협상 후반에 낭패를 보는 매도인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심리학과 실무 사례로 풀어드립니다.

M&A 앵커링(Anchoring),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앵커(Anchor)는 배가 바다 위에 멈추도록 내리는 '닻'입니다. 협상에서 앵커링이란, 처음 제시된 숫자가 이후 모든 판단의 기준점이 되어버리는 심리 현상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연구에서도 확인됐듯이, 인간은 처음 접한 숫자에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¹.

M&A에서 앵커링의 핵심: 인수자는 초기 제안가를 사실상 협상의 기준점 또는 심리적 상한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에 가격을 높이려면, 처음 제시한 수치 이상의 논리를 설득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 생깁니다.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나요? — 기업A 사례

물류 기업A의 대표는 초기 협상 단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후 기준으로 최소 50억 원은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인수자와 매도인이 생각하는 '50억 원'의 의미가 서로 달랐다는 점입니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주식 양수도인지, 자산양수도인지, 세금 부담을 누가 지는지, 실제 매각 지분율이 얼마인지에 따라 거래 구조와 기업가치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초기 협상에서 '세후 50억'이라는 숫자가 먼저 앵커로 자리 잡으면서, 이후 구조 조정이나 가격 재산정 논의가 나올 때마다, 양측의 가격 기준 차이가 반복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잘못된 앵커링이 만드는 3가지 문제

1. 인수자의 심리적 상한선이 고정됩니다

인수자는 처음 받은 제안서를 상부에 보고합니다. 예를 들어 "이 회사, 20억대면 검토할 만합니다"라고 보고한 실무진이 나중에 35억으로 가격이 올라간다면? 그는 상사에게 다시 설득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를 떠안게 됩니다. 결국 실무진은 초기 앵커를 방어하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2. EBITDA 조정 항목을 사후에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중소기업의 재무제표에는 오너 급여, 개인성 비용, 일회성 손익 등 다양한 '노멀라이징(Normalizing)' 항목이 존재합니다. 이 항목들을 초기 단계에 소통하지 않고 뭉뚱그려 가격을 제시하면, 나중에 "이 부분 조정하면 기업가치가 더 높아집니다"라고 해도 인수자는 이를 '사후 구실'로 인식합니다.

흔한 실수: "세후 100억 원을 받고 싶다"처럼 세금 구조와 지분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모호한 기준을 초기 가격으로 제시하는 것. 이 표현은 나중에 반드시 협상의 발목을 잡습니다.

3. 협상이 감정 싸움으로 번집니다

낮은 초기 앵커에 묶인 인수자 측이 가격 인상 요구를 거부하면, 매도인 입장에서는 억울함이 쌓입니다. 이 감정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면 논리가 아닌 감정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 시점부터는 가치 협상보다 신뢰 회복 자체가 더 어려운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 잠깐 — "그럼 그냥 높게 부르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셨나요?

이 글을 읽고 이런 결론을 내리셨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앵커링 전략의 핵심은 '높게'가 아니라 '근거 있게'입니다. 근거 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근거 없는 고가 앵커링

실사에서 재무 수치와 괴리가 드러나는 순간, 인수자의 신뢰가 무너집니다. "처음부터 부풀렸구나"라는 인식이 생기면 이후 모든 숫자를 의심하게 되고, 협상 자체가 결렬될 수 있습니다.

근거 있는 앵커링

EBITDA 조정 항목, 멀티플 기준, 업종 비교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정한 가격은 인수자가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협상이 오가더라도 논리의 싸움이 되어 유리한 고지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근거 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좋은 앵커링'이 아닙니다. 신뢰를 잃으면 가격 협상 자체가 의미를 잃습니다. M&A에서 신뢰는 가격만큼 중요한 자산입니다.

올바른 앵커링의 4가지 원칙

1️⃣ 시장의 언어로 말하세요 — 멀티플(Multiple)과 EBITDA

"20억 원에 팔고 싶다"가 아니라 "EBITDA 기준 5x 멀티플을 목표합니다"로 표현하세요. 이렇게 하면 협상의 기준이 고정 숫자가 아닌 '공식'이 되어 사후 조정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2️⃣ EBITDA 조정 항목을 초기부터 명시하세요

오너 급여 조정분, 일회성 비용, 특수관계인 거래 등 조정이 필요한 항목들을 초기 제안서에 미리 언급하세요. "조정 후 EBITDA는 X억 원 수준"이라고 명시하는 것만으로도 앵커의 기준점을 훨씬 유리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3️⃣ 인수자의 내부 보고 구조를 이해하세요

인수자 실무진이 상부에 보고한 금액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따라서 초기 단계에 전달하는 숫자는 나중에 인상의 여지를 둔 수준으로 설정하되, 반드시 데이터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4️⃣ 모호한 표현을 피하세요

"세후 기준", "대략 X억", "상황 봐서"와 같은 표현은 상대방에게 해석의 여지를 주고, 그 해석은 항상 인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결론 — 첫 숫자가 마지막 숫자의 범위를 결정합니다

초기 제안가는 단순한 '시작점'이 아닙니다. 협상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그 천장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단, 그 천장은 데이터와 논리로 쌓아올린 것이어야 합니다. 근거 없이 높은 숫자를 던지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실사 전이라도 EBITDA 조정 항목과 멀티플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고, 시장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 — 이것이 진짜 앵커링 전략의 핵심입니다.

📌 핵심 요약

  • 인수자는 초기 제안가를 기업 가치의 최대치로 인식하며, 이후 가격 인상 요구에 심리적으로 저항합니다.

  • 좋은 앵커링은 '높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EBITDA·멀티플 등 근거 있는 수치로 기준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 근거 없는 고가 제시는 실사에서 신뢰를 잃게 만들고, 협상 결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모호한 표현(세후 기준, 대략 X억 등)보다 시장의 언어(멀티플, 조정 EBITDA)로 초기부터 명확하게 소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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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¹ 출처: Kahneman, D.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앵커링 편향(Anchoring Bias) 실험 연구 기반.

² EBITDA(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 이자, 세금,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 M&A 기업가치 산정의 핵심 지표.